드라마 시티 - '키다리 아저씨'에 관한 짧은 감상
소통 부재의 단절감과, 헤어날 길 없는 수렁의 일상 속에서 우연히 삶의 끝자락이 얽히게 된 호준(정웅인)과 석영(박신혜)의 인생은 남루 그 자체이다. 집 주인이 올려달라는 전세금을 달포가 지나도록 마련 못해 거리로 내몰릴 지경에다 여기저기 빚독촉에 시달리는 퇴물 스턴트맨 호준이나, 부모의 이혼으로 시설에서 생활하다 뛰쳐나와 3년째 거리 생활을 하는 가출 소녀 석영에게 하루하루는 그저 힘겨움과 버거움의 연속이다.
이런 그들에게 서로는 자신의 삶을 수렁에서 건져내어 줄 구원과도 같은 존재이다. 호준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있을 때 복권이 든 지갑을 훔친 석영은 호준에게 그가 절실하게 원하는 돈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존재이며, 자신을 위해 울어주고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존재인 호준은 석영에게 그녀의 시한부 인생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감정선은 어긋나기만 한다. 거듭된 만남에도 불구하고 호준은 자신에게로 향한 석영의 진심을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오히려 석영이 짜증스럽다. 그러던 호준이 석영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은, 석영과 연락이 끊긴 어느 날 문득 그녀가 남기고 간 캠코더를 돌려보다 석영의 신산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삶의 편린들 위에 겹쳐지는, 자신을 향한 석영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석영을 찾아 헤매던 호준은 복권을 돌려받았던 지하철 사물함 앞에서 석영과 재회하고, 두 사람이 함께 찾은 바닷가에서 석영은 쓰러져 짧은 생을 마감한다.
사실, 스토리만을 놓고 보자면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결말이 뻔히 예상될 만큼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게다가 시청자가 쉽게 눈치챌 만큼 여러 영화들에서 카피해 짜깁기한 장면들까지 감안하면 이 드라마가 내세울 수 있는 미덕이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에도 이 드라마가 볼 만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한 정웅인의 실감나는 연기와, 두어 군데 불필요한 감정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10대 가출 소녀 역을 충실히 소화해 낸 박신혜의 빼어난 캐릭터 해석 능력 덕분이라 하겠다. 여기에다 매 장면 매 씬을 생동감 있는 대사로 채워 시청자를 브라운관 안으로 인입해 들인 작가의 능력과, 상투적이고 진부한 스토리를 65분이란 제한된 시간과 화면에 잡아낸 PD의 연출력 역시 간과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뻔한 상투성과 진부함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뻔한 상투성과 진부함 때문에, 이 드라마는 글쓰기의 본질과 관련하여 내게는 더 의미있게 읽힌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석영의 '캠코더찍기'가 갖는 의미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석영에게 '캠코더찍기'는, 전통적 글쓰기의 특정한 관점에서 볼 때,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드가 그랬듯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만, 세헤라자드의 '이야기하기'와 석영의 '캠코더찍기' 간에 차이가 있다면, 셰헤라자드에게 보상으로 주어진 죽음으로부터의 유예가 석영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드라마의 약점인 상투성(및 진부함)과 관련되는 문제로서 이 세상에 '독자적이고도 창조적인' 글쓰기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텍스트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텍스트 간의 넘나듦과 간섭이 글쓰기의 보편적인 전략이 되어 버렸다는 주장이 기왕에 설득력 있게 제기되어 왔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될 것이다. 따라서 내용과 형식 면에서 이 드라마가 차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여러 텍스트들('키다리 아저씨','파이란','8월의 크리스마스','나쁜 남자' 등)의 흔적을 그 자체로 긍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점이 되겠다. 이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기존 텍스트의 차용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텍스트에 참여하는 생산자들이 채택한 생성 전략의 유효성과 적절성이다.
지난 금요일 오후 하릴없이 채널을 돌리다 별 생각없이 이 드라마에 시선을 고정시키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써온 내용과 별도로, 보면서 참 눈물이 날 만큼 슬퍼졌다는 짧은 감상 한 마디 정도는 토로해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짧은 감상에다 한 마디만 더 덧붙인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되지 않을까. 결말을 눈치채이는 상투적인 삶에 대해, 더구나 그 끝에 죽음이 가로 놓인 상투적인 삶에 대해 누군들 눈물 흘리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고.
- 2005. 05. 17.